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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리뷰/세필촉

만년필 내돈내산 리뷰] 파이롯트 에라보 SF촉 _부드러운 세필

by 필로그램 2022.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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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부리로 쓰는 것 같지만 의외의 버터필감 세필촉

이 만년필을 한달 가까이 자주 꺼내어 쓰며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명품이다>였어요. 만년필이 지녀야 할 대부분의 장점을 두루 갖춘 만년필이라 할 수 있죠. 에라보는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 품질이 뛰어난 펜으로 추천되곤 했기에 기대를 품고 구입했는데 펜입하고 노트 위에 촉을 긋는 순간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에라보 만년필 리뷰 시작해봅니다.

 

 

◑ 포장 ◐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케이스의 인상은 좀 구식이라는 느낌이예요. 마닐라지 느낌의 은색지류로 외포장되어 있는데 로고 부분을 금박 후가공하였음에도 회색 무코팅 용지가 주는 칙칙한 분위기가 몇십년 전에 만들어 놓은 재고상자에 포장해 보낸 것 같은 인상을 줘요. 파이롯트 만년필은 늘 이 상자에 담겨왔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할만도 한데 함께 주문한 트위스비 다이아몬드 미니 패키지와 나란히 놓고 보니 파이롯트의 옛감성이 좀 구리게 느껴졌죠.

심지어 플라스틱 본품포장 케이스도 촌스러워요. 요즘은 여성 유저들이 증가하고 있는만큼 파이롯트도 좀 현대정서를 반영한 패키지로 업그레이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현직 디자이너로서의 희망사항.

 

 

 

◑ 기본구성품 ◐

케이스 안에는 비닐포장된 본품과 품질보증서, 소형 설명서가 리플렛 형식으로 들어있고 검정색 카트리지가 하나 들어있어요.

  

 

컨버터는 만년필 안에 삽입되어 있으므로 총 구성품은 [만년필, 컨버터, 카트리지1, 보증서, 설명서] 였어요.

◑ 컬러감 ◐

채도가 살짝 어두운 빨강이예요. 그래서 가벼워 보이지 않아요. 이 정도면 예쁜 빨강이라는 인상이예요. 검정색 펜이 많아 빨강으로 선택했는데 쓸수록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장 만년필이 60구 정도 되지 않았다면 검정 컬러로 굵은촉도 사봤을텐데.(어쩌면 몇년 내로 살지도 모르겠네요)

 

 

◑ 펜촉 ◐

선택할 수 있는 펜촉의 종류는 4가지였어요. SEF(부드러운 가는촉), SF(부드러운 기본촉), SM(부드러운 굵은촉), SB(부드러운 더 굵은촉) 이 중 저는 SF촉으로 선택했어요. 만년필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무조건 EF촉을 선호했는데요. 만년필 필감의 참매력을 모를 때 저지른 착각에 가까운 취향이었죠. 극세필 만년필이라면 노트를 가리지 않고 필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만년필 취미생활이 지속될수록 잉크와 노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므로 결국 쓸만한 노트에서 매끄러운 필감을 내주는 펜촉을 선호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였어요. 요즘은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 역시 세필보다는 적당한 태필쪽에 관심을 두고 있답니다.

 

 

 

 

펜촉의 생김새는 새 부리와 닮았어요. 에라보를 쓸 때 새 부리 끝으로 쓰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드는데 생김새가 필감과도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에라보의 펜촉은 양 옆을 가운데로 눌러 모아줌으로써 펜촉의 회귀성을 높여 탄력을 증대해 만들어졌어요. 펜 끝에 힘을 실어 필기하면 슬릿이 슬며시 벌어지는데 이때 들어가는 힘이 좀 미약해서 슬릿의 움직임은 아주 정교해요. 살짝 힘주어 눌러 쓰면 연성촉 특유의 유니크한 필기물을 얻을 수 있어요.

 

◑ 컨버터 ◐

 

CON-40 컨버터가 포함되어 왔어요. 파이롯트 만년필은 보편적으로 이 모델의 컨버터를 사용하는데 잉크 용량이 매우 작은 편이죠. 보편적인 만년필 컨버터의 절반 수준밖에 충전되지 않아요. 물론 잉크에도 흥미가 많아 잉크를 자주 교체해가며 사용하는 편이라면 오히려 이런 저용량 컨버터가 나아요. 저 역시 필기량은 많은 편이지만 몇장 쓰다 잉크가 소진되면 기꺼이 컨버터를 세척해뒀다가 잉크를 리필해 사용하거든요.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이 컨버터 대신 CON-70 제품을 별도 구매하여 사용하길 추천합니다. (40, 70이 잉크 용량 표기예요, 약 9천원쯤.)

 

컨버터는 스크류 타입으로 잉크를 리필해요. 이 방식이 보편적이죠. 컨버터가 짧은 편이라 세척시 양 손으로 잡고 스크류 돌리는 걸 반복하는 과정이 약간 불편할 수 있어요. 이 점도 파이롯트 컨버터의 단점인데 CON-70 모델로 교체하면 해소되는 문제랍니다.

 

 

 

◑ 길이와 무게 ◐

캡을 닫았을 때의 길이는 약 13.75센티미터이구요. 총 무게는 18.5그람으로 매우 가벼운 펜이예요. 가벼운 걸로 유명한 라미 사파리의 무게가 16.7그람인 걸 참고하면 좋겠네요. 에라보 역시 실물 펜을 들었을 때 매우 가벼운 느낌이라 장시간 필기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어요.

 

 

 

 

캡을 제거하고 펜만 들었을 때의 길이는 약 12.3센티미터예요. 사파리 캡 제거시 16.6센티미터 정도이니 에라보가 조금 짧죠. 그러나 이보다 짧은 펜들도 왕왕 있기에 에라보의 길이가 짧은 편이라고 말할 순 없겠어요. 여러 펜들을 사용해본 제 판단으로 에라보의 길이감은 손이 큰편인 내게도 적당히 긴 펜이예요.

 

 

 

캡을 뒤에 끼우고 사용할 때 길이는 약 15센티미터예요. 잉크를 풀충전하고 캡을 뒤에 끼우고 써봤자 무게는 20그람 수준이니 캡을 끼워쓰는 걸 선호하는 분들께 좋아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트위스비 에코의 펜무게가 21그람인 걸 생각하면 판단이 쉽겠네요. 워낙 가벼운 펜이라 오히려 캡을 끼워 써야 무게중심이 잡혀 안정감이 생긴다는 점을 참조하면 좋겠어요.

 

◑ SF촉의 굵기 ◐

펜촉의 굵기는 사용하는 노트와 잉크 특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굵다, 가늘다 라고 구분해 표현하기 모호한데요. 그러나 다른 만년필의 F촉들과 에라보 SF촉을 같은 노트에 같은 잉크로 사용했을 때의 굵기로 표현하자면, 에라보 SF촉은 0.5 젤펜 굵기쯤 되요. 학창시절 나는 0.38 굵기의 젤펜도 선호했었으나 에라보를 SEF촉으로 구입했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SF촉이 주는 극강의 부드러움과 만년필 용지 위에서 표현해내는 잉크감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 세필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SF촉을 추천하고 싶어요.

 

 

토모에리버 노트 X 에라보 SF촉 X 시키오리 요나가 잉크

 

◑ SF촉 필기감 ◐

품질 좋은 노트와 흐름 좋은 잉크를 만난 에라보는 최고의 필기감을 보여줬어요. 세필에 속하는데도 부드럽구요. 펠리칸 M600으로 쓰는 것보다 더 버터필감스러운 필감이었어요. 종이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듯 매끄러운 필기감 때문에 이 펜의 20만원대라는 가격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어요.

 

 

토모에리버 노트 X 에라보 SF촉 X 몽블랑 미스테리 블랙

 

 

 

물론 흐름이 박한 잉크를 만났을 때는 부드러움이 감소되긴 했어요. 소장한 잉크 중 가장 흐름이 박한 몽블랑 미스테리 블랙을 펜입해보니 차이가 확 느껴졌죠. 그럼에도 세필촉스럽지 않은 적당한 부드러움을 유지하네요. 오히려 몽블랑 잉크 때문에 살짝 더 가늘게 표현되는 촉 굵기가 아쉽게 느껴졌기때문에 세필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도 SF촉을 더 추천하고 싶다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이죠.

 

 

글입다 레저버 노트 X 에라보 SF촉 X 펜브스 약엽&아보카도 잉크

 

 

이번에는 흡수력이 있는 100g 평량 노트에 필기해보았어요. 코팅감이 있어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토모에리보와는 필감 차이가 있음에도 에라보는 매끄러운 필감을 구현해주었어요. 매끄러움이 덜한 노트에 쓰니 오히려 낭창거리는 연성닙의 특성이 더 살아났구요. 사각거림도 더 커졌어요.

매끄러운 표면의 토모에리버 52g 평량지와 글입다 레저버 100g 평량노트 외에도 중국산 가성비 좋은 100g 노트에 사용해본 결과 펜촉과 궁합이 가장 좋은 노트는 역시 토모에리버였어요. 부드러운 필감을 극대화할 수 있었죠.

필감을 설명하며 에라보를 사용하면서 느낀 한가지 단점을 이야기해야겠네요. 에라보는 매우 가벼운 편에 속하는 경량펜이라서 장시간 필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매끄러운 토모에리버 위에서는 글씨체가 흐트러지는 양상을 보였어요. 가벼워서 필기시 안정감이 더해지지 않는 탓이었죠. 정자로 쓰겠다 마음먹고 천천히 신경써 쓰면 괜찮지만 빠르게 필기할 때는 평상시 내 필체보다 더 흘려 써진다는 점. 이게 에라보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해야겠어요. (단, 캡을 뒤에 끼우고 쓰면 좀 낫답니다.)


◑ 에라보 총평 ◐

1. 중형 사이즈에 18.5g 매우 가벼운 펜

2. 캡을 뒤에 끼우고 사용해도 가볍고 안정적인 무게중심

3. 세필에 속하는 SF촉으로 한글 필기에 적합

4. 세필임에도 매우 부드럽고 적당한 사각임도 있음

5. 닙마름 현상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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