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계정에 <소분잉크 판매 예정공지>를 올렸더니 '사고 싶은데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요' 라고 물어보시거나 '피스톤필러 만년필에도 쓸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덧글들이 있었어요. 저 뿐 아니라 소분잉크 판매링크를 열어두는 마니아 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처음 만년필에 입문하신 분들은 이걸 사는게 좋은지 본병을 사는게 좋은지 궁금하실 수 있겠어서 포스팅으로 정리해봅니다.
시중의 잉크 본병을 구입하면 평균 용량이 30ml 안팎인데요. 그림에 채색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면 1년 안에 다 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캘리그라피나 만년필 사용에 잉크를 사용하실 거예요. 펜에 사용하게 되면 30ml 잉크병 하나로 몇년을 써도 도무지 바닥 보기가 어려울만큼 사용량이 적어요. 그런데 써보고 싶은 잉크는 얼마나 많은지. 자꾸 새로운 잉크를 사게 되거나, 혹은 만년필 구입할 때마다 사은품으로 받게 되죠.
특히나 입문기에는 자기취향조차 확립되지 않아 여러 컬러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서, 저처럼 한 브랜드 잉크를 100색 이상 본병으로 사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해요. 살 때는 좋았죠. 쇼핑 택배 오면 얼마나 기뻐요. 저 많은 색 중에 하나도 똑같은 색이 없다니! 황홀할만큼 기분이 좋았는데요. 아, 1년 지나고 보니 본병잉크를 마구 사들일 일이 아니더라구요.
잉크는 관리하기에 따라 수명이 달라져요. 물기가 남아 있는 만년필이나 유리펜을 한번 담갔다 뺀 것으로- 혹은 악력이 부족해 뚜껑을 꽉 잠그지 않는 실수로- 곰팡이가 발생하거나 변색될 수 있어요. 수명이 영원하질 않죠.
병당 평균 1만원에 10병 구입했다고 생각하면요. 부지런히 쓴다고 해도 1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10만원 투자해 사들인 잉크의 수명이 과연 다 소진할 때까지 지속되느냐는 거죠. 관리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수시로 개봉해서 사용하다보면 곰팡이가 발생하거나 변질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쓰지 않았는데 곰팡이가 발생해 버려야 한다면 그것도 속상한 일이죠. 10만원으로 딱 10종류의 잉크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건 그것대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만년필 관련 커뮤니티에는 몽땅 사들인 잉크가 줄어들질 않는다고 소분하여 무료나눔하는 분들도 종종 있답니다. (그런 점에서 만년필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것도 좋겠죠.)
게다가 한번 써보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 잉크도 꽤 많이 생기더군요. 취향 때문이죠. 다양한게 좋아서 마구잡이로 형형색색 잉크를 들여놓고 보니 막상 제취향이 아니라서 아예 안쓰게 되는 색들이 많았어요. 쓰던 것만 자꾸 쓰게 되는거죠.
저도 잉크 구매량이 많아지면서 도저히 혼자서는 다 못쓰겠다 싶어 소분잉크 판매를 종종 해왔어요. 5미리 유리 공병에 새 스포이드로 컬러별로 소분해서 밀봉하는 거죠. 보통 잉크를 구입하자마자 소분 작업을 해둬요. 30미리 용량이라면 그 중 15미리는 3개의 공병에 소분하는 거죠. 저렴하게 블로그 통해 판매하고 팔리지 않은 소분잉크는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제가 쓰면 된다는 마음으로요.
본병에 남은 15미리를 우선 사용하고 혹시 다 소진하기 전에 변질되더라도 개봉하자마자 소분해 밀봉한 소분잉크는 변질되지 않을테니 이미 샀던 잉크를 변질 이유로 다시 사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좋더라구요.
| 소분잉크가 뭔가요?
소분잉크란 본병 잉크를 소량으로 나눠 담은 잉크인데요. 잉크를 소분하는 목적은 크게 2가지예요.
첫째. 관리부주의로 인해 혹시나 잉크가 변질되었을 때 남은 잉크라도 살리기 위해
둘째. 혼자 다 쓸 수 없는 잉크를 타인에게 양도하기 위해.
| 소분잉크 장단점
제 경우 2가지 목적 모두를 충족하기 위해 잉크를 소분했는데요. 잉크를 소분할 수 있는 공병 종류는 바이알 병(유리 또는 플라스틱)이 가장 흔한데요. 용량은 1ml, 3ml, 5ml, 10ml로 다양하나 통상적으로 5ml 바이알 병에 소분되는 편이예요. 만년필에 사용하기 딱 좋은 용량이거든요.
5ml 용량이면 만년필 컨버터로 약 7~10회 가량 충전이 가능해요. 편차가 있겠지만 컨버터 1번 충전하면 a5노트 5장 이상 쓸 수 있으니 꽤 오래 쓸 수 있겠죠?
캘리그라피에 사용하실 경우 바이알 병 그대로 놓고 열어서 딥펜 등에 잉크를 콕, 찍어(담가) 쓰는데요. 이렇게 사용해도 상당히 오래 쓸 수 있어요. 5ml 용량을 다 쓰고 나서 본병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거죠. 물론 휴대하기 좋고 부피가 적어서 소분잉크만 선호하는 분들도 있어요.
소분잉크 구입하시기 전 미리 아셔야 할 부분이 잉크병 입구 크기인데요. 딥펜이나 컨버터는 어지간하면 다 들어는데요. 만년필 끝을 통째로 담가서 잉크를 충전해야 하는 <피스톤필러 방식의 만년필> 중에는 소분잉크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어요.
사진 속 공병은 18ml 용량이라 5ml 소분병보다 높이가 2배 이상 높은걸 참조해주세요. 유리펜 문제 없이 사용되고, 딥펜도, 컨버터 종류도 모두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데요. 피스톤필러 방식의 국민만년필인 <트위스비 에코>는 사용 가능하지만 대형기에 속하는 오로라 등은 펜촉 결합부까지 푹 잠기질 않아요. 목까지 푹 잠겨야 문제없이 펜입할 수 있는데, 사용이 불가하겠죠?
피스톤필러 방식의 만년필을 주로 사용하시는 분들께는 소분잉크가 적합지 않을 수 있답니다.
입구가 넓은 소분병을 사용하는 판매자도 있으니 입구 지름을 확인해보고 구입하시면 좋아요.
| 소분잉크는 어디서 사나요?
대표적으로 <블루블랙 펜샵> 이나 <카페캘리> 등에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의 소분잉크를 판매하고 있어요. 상당히 다양한 색과 브랜드 잉크를 판매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잉크는 다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구요.
다만 저도 잉크를 소분해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요. 바이알 병 자체 단가가 비싸기도 하고, 일일이 스포이드로 잉크를 나눠 담고 밀봉하고 라벨링하는 작업에 상당히 많은 노고가 들어가요. 그래서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소분잉크들 가격이 본병 잉크 대비 비싸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본병 잉크를 여러개 사는 것보다는 경제적인 실사용을 위해 소분 잉크를 구매하시는 걸 추천하는데요. (본병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가 변질되면 통째로 폐기해야 하니 양이 많은 본병보다는 소분잉크가 더 실용적일 수 있어서요) 쇼핑몰 판매 잉크 외에도 개인이 소분해 판매하는 잉크를 구입하시면 비교적 저렴하게 구하실 수 있답니다.
하지만 개인이 소분잉크를 판매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게다가 본인이 쓸 용량만 남겨놓고 소분해 판매하기 때문에 수량도 적죠. 소분잉크 써보신 분들은 이런 때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인기 있는 잉크는 매진도 빨라요. 발견했을 때 후다닥! 주문해야 하는 이유죠.
| 소분잉크 사용팁
소분잉크가 많아지면 원하는 색만 꺼내 쓸 때 병을 일일이 꺼내봐야 해서 불편할 수 있어요. 잉크병 뚜껑면에 컬러 차트를 만들어 붙여두면 손쉽게 골라 쓸 수 있답니다.
컬러차트는 토모에리버처럼 발색이 정확한 용지에 발색해 네모로 잘라 붙여도 되구요. 라벨지 중에 뚜껑과 규격이 잘 맞는 라벨지를 사서 컬러차트 만들어 부착하셔도 좋아요.
정리하자면, 딱 원하는 색으로 10병 미만이면 충분하다- 싶으신 분들은 본병 잉크를 구입하시는 게 좋구요. 다양한 특성(점성, 농도, 색감 등)의 잉크들을 브랜드별로 다양하게 써보고 싶으시다면 소분 잉크를 구입하시는 게 더 좋습니다.
저는 몇년째 만년필에 빠져있으면서, 150종 이상의 본병 잉크를 수집하듯 사보았는데요. 소분판매로 절반씩은 소진하고도 남은 잉크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 욕심부린 걸 좀 후회했어요. 3년만에야 잉크는 꼭 자주 쓸 것 같은 잉크만 본병 구매를 하자! 는 결론에 다다랐죠.
그래야 처치곤란 잉크때문에 고민하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만년필을 자주 쓰다보면 다양한 컬러와 농도의 잉크를 필요할 때 딱 선택해 쓰고 싶은 마음이 되고 말거든요. 그럴 때 본병 잉크보다 소분잉크가 좀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해 요즘은 블루블랙 펜샵 등을 통해 필사하기 적합하지 않은 묽은 톤 잉크인데 색감이 너무 궁금한 제품 등은 소분잉크로 사서 써보고 있어요. 5미리 용량인데도 꽤 오래 쓸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높답니다.
사용 목적과 사용자 성향에 따라 필요를 구분하여 소분잉크 VS 본병 구매를 결정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취미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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