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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단상모음

입문자 TIP] 만년필 수집 VS 실사용 목적

by 필로그램 2022. 8. 31.

 

만년필이 젤펜류보다 무조건 나을 거라는 착각 

만년필에 입문할 때, 저에겐 무지에 의한 착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일반 볼펜류보다 10배 이상 비싼 값으로 시작되는 만년필, 당연히 볼펜류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필기구일거라는 오해였죠. 다양한 가격대의 만년필을 30자루 이상 사서 써보고 난 뒤에야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에 확신이 들었는데요. 값비싼 만년필이라고 품질이 무조건 뛰어나고 드라마틱한 필기감을 주는 것은 아니더군요. 

 

3년가량 덕후 수준으로 다양한 만년필을 모아온 입장에서, 입문하기 전 고민해봐야 할 첫번째 관점은 <수집템으로 시작할 것이냐, 실사용 목적으로 시작할 것이냐>라고 생각했어요. 

 

 

 

실사용 목적 : 5개 정도면 충분

만년필마다 크기, 배럴의 둘레, 그립부 모양, 길이, 무게, 펜촉의 특징이 달라서 사용자의 손에 꼭 맞는 만년필은 따로 있어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만년필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별로라고 입을 모아 악평하는 만년필이라도 나에게는 최고의 만년필일 수 있죠. 그래서 만년필이 한번 시작하면 자꾸 늘어나는 아이템일 수 밖에 없는 거겠죠.

 

유명한 만년필들을 하나씩 다 손에 쥐어보고 딱 하나면 결정해서 쓰는 것도 좋구요. 유명한 만년필 중에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좋은' 만년필 몇자루를 추천받아 5개 정도 사서 마음 가는대로 하나씩 꺼내 쓰는 것도 좋아요. 

 

실사용 목적이시라면 제가 몇가지 골라드릴 수 있는데요. 펜촉이 주는 필감 차이가 있는 가성비 훌륭한 만년필로 골라봤어요.

 

 

이 펜들에 대한 개별 리뷰는 제 다른 글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아직 포스팅되지 않은 펜도 있어요. 차차 올라올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사용해본 만년필 중 10자루만 고르라고 하면 우선 선택할 만년필들 + 입문용으로 적합한 프레라를 추가한 리스트입니다. 

 

이 정도 라인업이라면 실사용하는데 차고 넘치는 품질이라고 생각되요. 여기서도 꼭 5자루만 고른다면,

 

1. 노크식 만년필인 캡리스 

2. 잉크 흐름이 풍부하고 묵직한 바디감이 있는 쉐퍼 아이콘

3. 대용량 피스톤필러 만년필의 정석을 보여주는 트위스비 에코

4. 가볍고 세필이며 부드럽고 사각이는 손맛의 갓성비펜 홍디안 N1

5. 가격대는 있지만 세필이고 버터필감인 파이롯트 에라보

 

펜촉의 필감이 완전히 다른 모델로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여기에 소분잉크 세트로 20색~30색 정도 다양하게 사서 써보시는 것만으로도 만년필 입문기는 매우 즐겁게 흘러간답니다. 

 

 

 

 

 

수집템으로 더없이 훌륭한 <만년필>

3년간 65구 이상 되는 만년필을 수집했어요. 수집하려고 시작한 일은 아닌데 열심히 돈 벌어다 쓸 데(?)가 없던 차에 취미생활을 잘 만난거라 생각하며 궁금한 모델들을 사들이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죠. 제 경우 실사용 목적으로 시작한 만년필이, 3년만에 수집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변경된 거였죠. 이것도 이것대로 만족감이 높아요. 

 

사람은 은퇴기가 될 때까지 약 45년 정도 경제활동을 하는데요. 15년 정도는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생활용품을 소비하는 데에 비용을 들이고 생활기반이 갖춰진 뒤에는 무엇이든 취미활동에 일정비용을 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여유가 생긴 시점에 만년필을 시작하니 좋더군요. 만년필을 수집하지 않았더라도 그 정도 비용을 다른 데에 썼을 거예요. 어차피 쓸 돈, 밖에서 차 마시고 여행다니고 패션템에 소비하느니 만년필에 쓰는 게 낫다는 기회비용 계산도 끝낸 뒤였죠. 

 

가방 수집이나 신발 수집에 비해 자리 차지를 많이 하지 않으며 수많은 잉크를 다양하게 펜입해 써보는 것으로 취미시간을 즐길 수 있으며 예쁘고 특별한 디자인의 만년필은 계속해서 출시되니까요. 집순이 집돌이에게 이만큼 좋은 취미템이 또 있을까요?

 

 

단, 제태크 관점에서 접근하면 후회할 수도

만년필도 고가 제품이고 한정판으로 많이 출시되다보니 어떤 분들은 '지금 사놨다가 나중에 좀 비싸게 팔면 돈 되겠다'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화폐가치는 계속해서 조금씩이나마 높아지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만년필 시장은 생각보다 충성고객층이 넓지 않은 소규모 시장이라는 점을 꼭 고려해야해요.

 

필기 자체를 안하게 되는 시대인만큼 필기구에 관심을 갖고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 자체가 적어요. 이미 지나간 한정판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현 시점에서 출시되는 새로운 한정판들이 많구요. 예전 모델을 모아서 리셀링 하기에도 큰 기대가치가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한정판 만년필 10구를 소장하고 있다면 운 좋게 2~3구 정도는 구매가보다 높게 판매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머지는 값을 많이 깎아도 팔릴까 말까일 수도 있으며 만년필 이외의 관련물품을 구입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거라는게- 제 사견입니다. 

 

 

 

 

 

 

수집가마다 결이 달라요. 

수집목적이 최우선인 분들은 아예 실사용 전용 펜과 보관용 펜 2개씩을 구입하시기도 하구요. 패키지에서 꺼내지 않은 채로 보관하는 분들도 있고, 개별 비닐포장지 안에 담은 채로 펜 보관함에 진열/보관하는 분들도 있어요. 제 경우 실사용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1구씩 구입해 펜 보관함에 진열해두고 기분에 따라 하나씩 골라 쓰는 편이구요. 

 

만년필 한정판 위주로 수집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브랜드별로 라인업하거나, 가장 맘에 들었던 모델을 출시될 때마다 전부 수집하거나, 잉크 위주로 수집하거나, 노트 위주로 수집하거나- 각양각색이더군요. 저는 하나로 제한되지 않았었는데, 3년만에 특정 모델의 한정판 시리즈를 수집해보는 방향으로 마음먹었어요. 

 

네, 만년필에 입문한지 만 3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저 역시 수집가, 그 시류에 동승하기로 했답니다. 제가 만년필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출시된 모델들을 수집하기엔 늦은 감이 있으므로 이번에 새로 라인업한 오로라 <비밀의 도시> 시리즈를 모아보기로 했어요. 이건 순전히 수집을 위한 구매죠. 

 

펠리칸 소버린 시리즈를 수집하자니 필감이 제 손에는 너무 맞지 않았고, 몽블랑은 145, 146, 149 시리즈 사서 써보니 굳이 더 모으고 싶을만한 디자인이 없었거든요. 헤리티지 라인 정도면 모를까, 몽블랑 한정판 시리즈는 수집하고 싶은 디자인이라기엔 좀 투박하게 느껴졌어요. 어지간한 유명 브랜드 제품은 다 사서 써봤고 수집템으로 괜찮은 모델이 있을까 열심히 관찰해봤지만 저에겐 오로라가 딱 맞는 것 같아서요. 

 

 

 

 

 

잉크와 노트까지 모으기 시작하면,

만년필을 시작하면 잉크와 노트도 수집하게 되는데요. 수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만 새로운 잉크는 출시되고, 세상엔 똑같은 잉크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하나 둘 모으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죠. 다만 잉크는 관리하기에 따라 변질될 수도 있는 항목이라 가능한 사자마자 소분해두고 관리 잘 하며 쓰려고 신경써요. 그리고 가능한 늘리지 말자고 생각하면서.....(최근에 디아민 잉크를 110색 한꺼번에 사버렸다는...)

 

노트도 저마다의 특징이 다 달라서 사각거리는 느낌을 살려주는 노트, 부드러움을 살려주는 노트, 잉크 색상을 최대한 원색대로 표현해주는 노트, 드로잉과 채색이 가능한 노트 등 표면질감과 표지 디자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하나 둘 사서 모으게 되요. 심지어 이 노트가 언제 단종될지 모르니 몇권 사두고- 또는 언제 또 할인할지 모르니 몇권 사두는 식으로 제 서재의 한쪽 책장은 노트로 꽉 차버렸어요. 

 

 

가능하다면 범위를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도

수집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가 뒷덜미에서 식은 땀이 솟는 기분이네요. 네, 저도 제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건지 모르겠어요. 수집할 목적이 아니었는데 계획 없이 하나 둘 사모으다보니 떠밀리듯 수집가의 길로 걷게 된 것도 같네요.

 

애초에 필사하기에 딱 좋은 실사용 용도의 서로 특색이 다른 펜 5자루 정도만 사서 썼더라면. 잉크도 소분잉크 세트로 30색 정도 사서 하나씩 기분대로 써 보는 방향이었더라면. 평생 혼자 다 쓰지도 못할 만년필을 수집하겠다고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들이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만년필 입문하기 전에 실사용 위주로 소비할 건지, 수집 방향으로 소비할 건지를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도 현명한 소비방식이 되겠어요. 제가 만년필 시작할 때는 거주 도시에 펜샵이 없어 시필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가성비 훌륭한 만년필을 몇개씩 딱 정해주는 블로거나 유튜브도 없었거든요. 하나씩 사서 써보면서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던 터라 안사도 좋았을 만년필을 사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에 본 블로그 통해서 제 경험을 나누는 거니까요. 이런 글들이 입문하시는 분들께 유익한 정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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